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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성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인 1890년 초, 당시 천주교 조선교구장이었던 블랑(Blanc) 주교는 경상도 지역에 최초의 가톨릭 사제로 죠조(Jozeau, 趙得夏) 신부를 파견하였다. 죠조 신부의 파견지는 절영도( 영도)에 있던 조내기 공소( 청학성당 수녀원 자리)였다. 그런데 절영도는 섬이었던 탓에 내륙에서의 전교활동을 위해서는 매번 배를 타야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그래서 죠조 신부는 전교활동의 근거지를 부산의 중심지로 옮겨갈 계획을 세우게 되고, 마침내 부산포의 초량에 성당부지( 부산가정성당 터)를 매입한다. 1899년 5월에 새로 부임한 드망즈(Demange) 신부는 새 성당 예정지인 초량으로의 이전 계획을 뮈텔(Mütel) 주교에게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으며, 그해 10월에 현 《부산가정성당》 부지 위에 일본식 목조건축 성당을 완공하고 ‘부산성당’으로 명명하였다.

그런데 1901년부터 일본인 거류지가 시가지로서 틀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부산성당’ 인근까지 확장되었으며, 특히 경부선 철도 기점에 ‘부산성당’의 대지 일부분이 포함되어 있음을 당시 ‘부산성당’ 주임사제였던 로(Rault, 盧若望) 신부가 확인하면서 성당 이전 문제가 또다시 제기되었다. 이후 르 쟝드르(Le Gendre, 崔昌根) 신부와 쥴리앙(Julien, 權裕良) 신부가 성당 이전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였고, 당시 천주교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에게 성당 이전을 건의하였다.

이런 와중에 교황 비오 10세는 1911년 4월 8일에 천주교 대구대목구 분할을 허가하면서, ‘부산성당’에서 사목했었던 드망즈 주교를 초대 대구대목구장으로 임명하였고, ‘부산성당’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드망즈 주교는 ‘부산성당’의 이전을 허락하였다. 이에 따라 1916년 5월, 당시 ‘부산성당’의 주임이었던 페셀(Peschel, 白鶴老) 신부는 범일동에 목조와 벽돌조로 새 성당을 신축하여 ‘부산성당’을 이전하면서 ‘부산진성당’으로 새로 명명하였다.

이렇게 경상도의 첫 가톨릭 성당이자 천주교 부산교구의 첫 성당인 ‘부산성당’이 초량동에서 범일동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부산성당’ 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였으나, 놀랍게도 119년이 지난 2018년에 새로이 《부산가정성당》으로 아름답게 부활한 것이다. 천주교 부산교구 공동체의 첫 출발점이자 경상도 지역에 첫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장소가, 이제는 ‘가정교회’와 ‘가정공동체’의 출발점이요 구심점이 되어 가정복음화는 물론 지역복음화에도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 옛날 소박하게 출발했던 ‘부산성당’이 오늘날의 ‘부산교구’라는 풍성한 결실을 얻은 것처럼, 《부산가정성당》은 다양한 가정복음화 활동을 통해 가정공동체와 지역사회에 사랑의 꽃을 피워내며 행복의 열매를 풍요롭게 맺어나가고 있다.

Written by   Fr. ROMANO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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